공부합시다/인문&역사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하여가(何如歌)는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그를 회유하기 위해 읊은 시조이다.


하여가는 청구영언으로 전해졌고, 포은집, 해동악부 등에는 그 한역시(漢譯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百年)까지 누리리라.


참고로 이방원은 무장 가문으로 유명한 이성계 집안에서 유일한 문과 급제자였다.


- 태종 이방원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답하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포은 정몽주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는 전문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이다.


포은집(圃隱集)에는 한역(漢譯)되어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라 실려 전해지고 있다.


이미 기울어 가는 고려이지만 끝까지 굳은 결의를 지키려는 유학자의 자세와 두 왕조를 섬기지 않겠다는 신념이 잘 나타났다.



해동악부(海東樂府)와 포은집(圃隱集)에서는 다음과 같이 한역되어 전해지고 있다.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한편,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해상잡록(海上雜錄)을 인용하면서 이 시조의 작자는 정몽주가 아니라 백제 여인 한주(韓珠)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고구려 안장왕이 태자였을 대, 백제에 잠입하여 개백현(현 경기도 고양시)에서 정세를 살피다 한주라는 미녀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안장왕이 임무를 마치고 한주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고구려로 돌아간 후, 

개백현의 태수가 한주의 미모를 탐하여 취하려고 하였으나, 한주는 이 시조를 읊어 안장왕에 대한 절개를 나타내었다는 것이다. 


안장왕과 한주의 사랑 이야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있고, 고양시 성석동과 일산동 일대에서 구전되었다.


- 두산백과 참조


- 이방원의 친필(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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