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인문&역사

조선 조말생 실제 역사

조선 조말생 실제 역사


이번에 육룡이 나르샤에 나온 조말생은 실존인물이다.


예전에 흥미롭게 본 책중에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이라는 책이 있다.

읽은 지 좀 되었는데 "역사에서는 아마 1426년(세종 8년)에 장죄로 연좌되어 외직으로 좌천되었다." 이 부분인 것 같다.


그 책에서 세종 때 조말생은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이에 신하들은 조말생의 죄목이 가볍지 않다며 귀양이 아닌 사형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세종 또한 고집을 꺽지 않고 조말생의 여러 공로를 이유로 귀양보내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진실로 아름답게 여긴다. 허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의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 p.110 



- 조말생


조말생 1370(고려 공민왕 19년)∼1447(조선 세종 29년). 조말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근초(謹初)·평중(平仲), 호는 사곡(社谷)·화산(華山)이다.

보승별장(保勝別將) 인필(仁弼)의 증손자로, 아버지는 서운관정(書雲觀正) 의(誼), 조용(趙庸)의 문인이다.


1401년(태종 1년) 생원으로서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요물고부사(料物庫副使)에 임용되었다가 감찰, 정언, 헌납을 거쳐 이조정랑으로 승진하였다. 

140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이 되었으며, 다시 장령, 직제학을 역임했다.


그 뒤 1411년에는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가 되었다가 머지 않아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

승진하여 지신사(知申事) 등을 역임하고, 1418년에는 이조참판이 되어 가정대부(嘉靖大夫)가 되었다. 

같은 해는 8월에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426년(세종 8년)에 장죄로 연좌되어 외직으로 좌천되었다.

1432년에 동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이듬해 함길도도관찰사에 임명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그만두었다.

1434년 지중추원사가 되었고, 1435년에 판중추원사가 되었으며, 대제학을 지냈다.


그러다 1438년에 다시 판중추원사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442년에는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으며, 1446년에 영중추원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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