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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업적과 죽음

정도전은 고려말, 조선초 성리학자다.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시호는 문헌(文憲), 별칭은 해동장량(海東張良)이다.


본관은 봉화(奉化). 아버지는 형부상서 염의선생 정운경이고, 어머니는 우연의 딸 영천 우씨다. 


양광도 단양현 출생으로, 경상도 순안현에서 성장한 그는 과거 급제 후 성균관에 있으면서 성리학을 장려했다.


외교적으로는 권문세족에 대항하여 명나라와의 외교론을 주장하였다가 여러 번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였다. 


1383년에는 이성계를 만나 정사를 논하다가 역성혁명론자가 되었다. 


이후 정몽주, 이성계 등과 함께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추대하였다가 1392년 조선 건국을 주도한 공로로 개국공신 1등관에 녹훈되었다.


관직은 판삼사사를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영의정부사에 추증되었고, '봉화백'에 봉작되었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정도전은 조선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모든 체제를 정비하여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정도전은 한양 시내의 전각과 거리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제1차 요동 정벌과 제2차 요동 정벌에 반대하였지만 요동을 정벌할 계획을 세워 명나라와 외교 마찰을 빚었고, 공신과 왕자들이 사적으로 보유한 사병을 혁파하려다가 갈등을 겪는다. 


그 뒤 신덕왕후 강씨 소생 방석 등을 세자로 추대하였고, 요동 정벌을 계획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갈등하던 중, 이방원이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방원의 군사들에게 피살되었다. 



- 삼봉 정도전



정도전은 성리학 이념을 보급하였으며, 안향-백이정-이제현의 학통을 계승한 목은 이색의 문하생이자 정몽주, 권근의 동문이다.


나중에는 정몽주, 길재의 문하생들에 의해 폄하되기도 했다.


한편 정도전은 조선사회에 성리학을 정착, 국교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신덕왕후 강씨와 함께 세자 책봉에 공을 들였던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조정에서 철저히 배척되었다. 


태종은 정도전을 역적으로 만든 뒤 포은 정몽주를 추상하였으며, 계속 역적으로 매도되어 오다가 고종 때에서야 복권되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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