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인문&역사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


드디어 육룡이 나르샤 마지막 회가 끝이 났다.


태종 이방원은 마지막 부분에서 이종무 장군에게 대마도 정벌을 명령한다.


분이와의 만남 이후에 결정했다는 것은 픽션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실제 역사의 한 부분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tnwlsdnpdlxj?Redirect=Log&logNo=60199752963



- SBS 육룡이 나르샤 대마도 정벌 지시 장면

 

음력 1419514일 대마도 정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유정현, 박은, 이원, 허조가 들어왔다.

 

태종, 세종 : 허술한 틈을 타서 대마도를 치는 것이 어떻겠소?

 

유정현 외 : 허술한 틈을 타는 것은 불가하옵니다. 적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려서 치는 것이 좋사옵니다.


조말생 : 허술한 틈을 쳐야 하옵니다.


태종 : 옳거니! 이종무를 삼군도제찰사로 임명하고, 우박, 이숙묘, 황상을 중군 절제사로, 유습을 좌군 도절제사, 박초, 박실을 좌군 절제사, 이지실을 우군 도절제사, 김을화, 이순몽을 우군 절제사로 각 임명하니, 하삼도 병력과 병선을 모아 견내량에서 대기하도록 하라!

(세종실록 1514일 기사, 재구성)


대마도 정벌은 세종이 주도 하였다기 보다는 상왕인 태종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병력의 규모는 병선 2백여 척, 병사 17~8천 명 정도였다. 대마도정벌의 총책임자였던 이종무 장군은 1419617일 출정하려 하였지만 바람이 심하여 일단 귀환하였다가 19일에 다시 출정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20일에 승전보가 조선 조정으로 당도하였다.

오시(11~ 13)에 우리 함대 10여 척이 먼저 섬에 도착하였는데, 왜구가 자신들의 배인 줄 알고 환영하였다가 대군이 뒤이어 두지포에 정박하니 모두 도망쳤습니다. 다만 왜구 50여인이 막으며 싸웠으나, 이내 흩어졌습니다. 도도웅와(대마도주)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고, 이에 우리 군사가 수색하여 적선 129척을 빼앗았습니다. 20척은 쓸 만해서 남겨두고 나머지는 불살라버렸습니다. 또한 도적의 집 1,939호에 불을 질렀고 141명의 목을 베었고, 포로는 21명입니다. 또한 포로로 잡혀있던 중국인 남녀가 131명 있었는데 이들을 모두 구출했습니다.

(세종실록 1620일 기사, 요약)


하지만 승전의 기쁨도 잠시, 패전의 소식이 들려온다.

이종무 등이 다시 군사를 보내어 가옥 68호와 배 15척에 불을 지르고, 도적 9명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또한 중국인남녀 15명과 우리 백성 8명을 구출하였습니다. 박실이 적과 싸왔으나 복병에 걸려 패전하였으므로 백 수십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곧 절제사 이순몽과 병마사 김효성이 왜구를 격퇴하였고, 도도웅와는 우리 군사가 오래 머물까 두려워 군사를 물려 수호하기를 빌었습니다.

(세종실록 1629일 기사, 요약)


박실의 부대는 패배하였다. 하지만 대마도주는 장기전을 우려하여 항복하였고, 이종무는 73일 군선들을 데리고 거제도로 귀항하여 1차 정벌전이 끝났다. 하지만 이때 박은은 명나라를 약탈하고 돌아오는 왜구들을 섬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종무로 하여금 다시 대마도를 치게 하였다. 이에 77. 2차 정벌전이 감행되었다. 반대주장도 상당수 있었지만 박은이 너무나 확고하게 주장하여 진행되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왜구 700여명을 죽이고, 100여명을 포로로 잡아 섬멸시켰기에 2차 정벌전은 도중에 중단하였다.



- SBS 육룡이 나르샤 대마도 정벌 지시 장면



대마도정벌의 의의

조선군이 승세를 잡은 것은 확실했지만 피해 역시 컸다. 조선군은 별다른 전투를 진행하지 않은 채 가옥과 선박들만 불태웠다. 그래도 대마도정벌은 조선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조선은 본래의 목적인 왜구 근절을 달성하였으며 향후 100여 년간 남해바다는 평화로웠다. 대마도정벌전에서 최고지휘관이었던 이종무는 박실의 패전을 문제 삼아 유배되는 형벌을 받았다.

 

왜구로 인해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게 된다. 비변사는 중종 시기에 다시 왜구가 출몰하자 임시비상기구가 되어 설치한 군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후 명종대의 3포 왜변 등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상설기구로 자리 잡았다.



참고자료


박시백(2005),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서울: 휴머니스트.

박영규(1996),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서울: ()웅진씽크빅.

유종문(2008), 이야기로 풀어쓴 조선왕조실록, 서울: 아이템북스.

조선왕조실록 국역

세종실록 4, 15144번째기사, <상왕과 임금이 대신들을 불러 대마도 치는 문제를 의논하다>

세종실록 4, 16204번째기사, <대마도에 도착하여 성과를 올리다. 이에 앞서 상왕이 행군이 늦음을 문책하는 교지>

세종실록 4, 16293번째기사, <이로군의 접전에서 박실이 많은 군사를 잃었으나 마침내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세종실록 4, 1772번째기사, <정역, 권홍, 이종무 등을 승진시키고, 다시 병선을 거느리고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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