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인문&역사

정도전의 요동정벌 (주원장, 영락제)

정도전의 요동정벌 (주원장, 영락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허패가 아닌 진패로 쓰고자 하였다.


역사적으로 요동정벌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추진했던 군사 정책이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옛 고구려 영토인 요동 지방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진행되었었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철령위를 점령했는데, 1388년(우왕 14년) 명나라가 이 지역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에 고려는 최영을 중심으로 요동 정벌을 단행했지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 좌절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여전히 명나라와 외교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자 개국 공신 중 한 사람인 정도전이 다시 강력히 추진하였다. 



- 명나라 황제 주원장


표전문 사건이 발단이 된다.

표문은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이고, 전문은 태자에게 보내는 문서인데 명나라 측에서는 이 문서에 문제가 있었다고 트집을 잡았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을 모욕하는 언급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 문서의 작성자를 정도전으로 지목하여 그의 압송을 요구한 것이다.


이후로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정도전이 1398년(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살해됨에 따라 요동 정벌도 중단되었다.


- KBS 드라마 정도전. 요동정벌


현실적으로 볼 때,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쉽지 않다.
그래도 가능성을 찾아보자면..
일단 주체가 남경으로 진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명나라도 건국초기로 내전에 시달렸다.


- 명나라 황제 영락제


조선도 왕자의 난으로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요동에서 남경으로의 진군은 상당히 먼 행군이 된다.
이런 정황은 요동은 당시 명나라 영토이기는 했지만 수도인 남경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조선은 요동과 가까워 금방 진군시킬수 있는 위치였으니 말이다.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볼 때 훨씬 효율적이기도 했다.

게다가 명나라에 의해 쫓겨난 몽고의 잔존 세력들은 북쪽으로 이동해 북원을 세우게 된다. 

이 북원 세력은 조선 중기 이후에도 존속하는데, 명으로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존재였을 것이다.

,